테일러 기타, 빈티지에 도전하다! 그랜드 퍼시픽 바디(317e, 517e, 717e)

  지난 2018년, 테일러 기타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브레이싱인 V-CLASS 브레이싱을 선보였다. 대부분의 통기타 제조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X 브레이싱을 근본부터 바꾸는 과감한 시도였다. 놀라운 점은 이런 실험적인 변화를 가장 상위 모델부터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 후, 가장 인기 있는 라인인 GA 바디의 전 모델을 V-CLASS 브레이싱으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악기 리뷰/통기타] - 테일러 기타 V-class 브레이싱의 장점과 단점(개인적 견해)

 

테일러 기타 V-class 브레이싱의 장점과 단점(개인적 견해)

2018년은 테일러 기타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테일러 기타뿐만 아니라 통기타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사건일지도 모른다. 바로 V-CLASS 브레이싱(이하 V 브레이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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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자신감 넘치는 행보는 2019년에도 이어졌다. 이번엔 '그랜드 퍼시픽(Grand Pacific)'이라는 새로운 바디를 내놓았다. 퍼시픽이라는 이름에서 GA보다 큰 바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감 넘치는 행보라고 표현한 것은 새로운 바디를 내놓으면서 기존의 드레드넛 바디 라인을 단종 시켰기 때문이다. GA바디야 테일러의 대표 라인이지만, 드레드넛 바디는 안 만드는 제조사가 드물 정도로 보편적 형태의 바디인데 그것을 단종시켰다는 대목에서 새 바디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랜드 퍼시픽 바디의 숫자는 7, 그리고 빌더스 에디션

그랜드 퍼시픽 바디(왼쪽부터 317, 717, 517)

  테일러는 3자리 숫자로 기타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데 그 중 일의 자리 수는 바디의 형태를 나타낸다. 이번에 새로 출시한 그랜드 퍼시픽 바디의 숫자는 7로, 317, 517, 717이 먼저 출시됐다. 올 하반기나 내년엔 100번대부터 900번대까지 다 채워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또, 517과 717은 빌더스 에디션(Builder's Edition)으로 출시 됐다. 이 두 기타의 측후판 목재는 각각 마호가니와 로즈우드다. 작년에 출시한 빌더스 에디션과는 다르게 비교적 전통적인 목재를 사용했다(k14ce와 614ce의 빌더스 에디션은 각각 코아와 메이플을 측후판으로 사용했다). 아무래도 빈티지 사운드를 콘셉트로 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무난한 목재 조합을 선택한 듯싶다. 

 

빌더스 에디션 기타들

  지금까지 출시한 네가지 빌더스 에디션의 공통점은 상판을 구워서 사용했다는 점(Torrefied Top)사틴 피니쉬(무광 마감)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사일런트 사틴이라는 반무광에 가까운 피니쉬다. 이 것은 V 브레이싱의 소리 특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만간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다.

 

그랜드 퍼시픽 라인의 특징

 

음질 중심의 설계

  가장 큰 특징은 컷어웨이(Cut Away) 된 모델이 없다는 점이다. 또, 작년에 빌더스 에디션에서 선보였던 베벨도 이번엔 볼 수 없다. 이 바디를 설계한 테일러의 수석 디자이너 앤디파워스는 그랜드 퍼시픽 바디에서 사운드 밸런스를 해칠만한 요소를 모두 배제했다고 밝혔다(심지어 517과 717은 픽가드도 없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빈티지 콘셉트에 맞게 수수하다. 앞서 언급한 모든 사양은 가격을 올리는 요소인데 배제되었기 때문에 취향에만 맞다면 테일러 기타의 다른 라인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느껴질 수 있다.

 

다양한 옵션(픽업의 유무와 색상)

  317e, 517e, 717e와 같이 숫자 다음 e가 붙는 것은 ES2 픽업이 있는 기타이고, 없는 것은 모델넘버만 있다. 이번 시리즈는 세 가지 기타 모두 픽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동시에 출시됐다. 특히 작년과 다르게 빌더스 에디션인 517과 717도 픽업 없는 모델이 나온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이런 특징이 앞서 언급한 음질 중심의 설계 때문인지 연주자들의 ES2 픽업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픽업 없는 기타의 판매가 월등하다면 조만간 ES3의 등장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내츄럴(왼쪽)과 와일드 허니 버스트(오른쪽) 색상

  또, 517과 717은 내츄럴과 와일드 허니 버스트(Wild Honey Burst)라는 두 가지 색상 옵션이 있다. 와일드 허니 버스트 색상의 기타는 약자인 WHB가 모델 넘버 뒤에 붙는다(ex. 517e WHB). 모든 옵션을 조합해보면 신제품은 총 10가지다.

 

뛰어난 넥감

테일러 517을 연주하고 있는 앤디 파워스

  이 시리즈에서도 테일러의 넥 감은 돋보인다. 로우 프렛에서는 빈티지 기타와 같은 V타입이고, 하이 프렛으로 갈수록 C타입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넥은 코드 위주나 솔로 위주의 연주자들 모두 편안하다고 느낄만 하다. 또, 넥힐을 낮추고, 둥글게 깎아서 하이프렛 연주에서 커터웨이가 없는 불편을 최소화했다. 앤디 파워스가 수준급 연주자이기도 해서인지 이런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바디 모양은 깁슨의 라운드 숄더(슬롭 숄더) 드레드넛과 닮았다.

717과 517WHB

  그랜드 퍼시픽 바디는 J-45로 대표되는 깁슨 J 시리즈의 라운드 숄더 드레드넛과 매우 닮았다. 하지만 바디의 깊이는 그랜드 퍼시픽이 더 얕다. 동사의 GA바디와 동일한 깊이여서 타사의 드레드넛보다는 다소 얕다. 바디가 깊이가 얕으면 아무래도 기타를 안았을 때의 밀착감이 좋고, 탄현시 반응이 빨라서 솔로나 핑거스타일 연주 시 더 존재감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저음의 양이나 배음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을 원하는 연주자들은 아쉽게 느낄 수 있다. 

 

빈티지한 사운드, 그러나 다소 애매하게 느껴질 수도..

 

  바디가 GA보다 커지면서 V브레이싱으로 바뀐 이후 줄어든 저음이 많이 보강됐다. 또, 빈티지 사운드를 표방하는 라인답게 중음역이 강조된 따뜻한 소리가 난다. 물론 이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테일러 라인에 비해서다. 기존 테일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고음의 선명함이나 샤방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더군다나 V브레이싱 기타들은 한음, 한음의 존재감이나 해상력이 더 돋보여서 자칫 빈티지와 거리가 먼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물론 빈티지 기타가 해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편견이다. 다만 문제는 그랜드 퍼시픽 바디는 뼈대(브레이싱)부터 옛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빈티지 사운드라기보다는 전혀 새로운 음색의 독특한 기타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테일러 기타의 행보를 기대하며..

  창립한 지 45년밖에 안된 브랜드가 빈티지 사운드를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빈티지 기타들의 문제점은 개선하면서 특유의 음색은 살리려면 이 숙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정확한 인토네이션을 갖는 빈티지 사운드 기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지 않은가? 아마도 앤디 파워스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번 신제품을 빈티지와 현대적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는 멋진 기타로, 또 다른 이들은 이도 저도 아닌 소리라 평하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아직 아쉬운 면이 느껴지지만, 테일러의 무한한 가능성에 설렘을 느낀다. 악평을 하는 사람도, 호평을 하는 사람도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브랜드, 바로 테일러 기타가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 테일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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