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614CE - 메이플에 대한 편견을 깨는 레트로 사운드

  목재의 음색 특성과 각각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성향을 알고 나면 어느 정도 기타 소리를 예측할 수 있다. 가령 'A 브랜드가 B 목재를 썼으니 이런 소리가 나겠지.'와 같은 예측이 그런 것이다. 이런 예측은 대체로 잘 맞지만, 오너나 디자이너가 바뀔 때면 구시대의 편견이 되기도 한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테일러 614CE가 그랬다.

 

앤디 파워스의 등장과 614CE의 변화

테일러 614CE 

  2014년, 앤디파워스가 수석 디자이너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리뉴얼 한 기타가 814CE와 614CE다. 두 기타 모두 브레이싱과 픽업에 큰 변화가 있었고, 이 것은 소리의 변화로 이어졌다. 특히 614CE는 상판을 구워서 에이징과 흡사한 효과를 내는 토리파이드 공법도 적용했다. 그 결과, 종전의 614CE와는 전혀 다른 기타가 됐다.

 

참고)

  아래에서 언급하는 614CE는 2014~2017년식의 X 브레이싱 기타임을 밝힙니다.

 

고풍스러운 디자인

614CE의 메이플 측후판

  2014년의 NEW 614CE는 외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614CE의 상징인 플레임드 메이플 측후판에 브라운 슈가 토너를 입히면서 분위기가 더 중후해졌다. 소리의 변화를 부각하기 위해 시각적 변화(?)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이보로이드 인레이(좌)와 스트라이프 에보니 픽카드(우)

  또, 헤드로고와 지판 인레이에 자개 대신 아이보로이드를 써서 빈티지한 느낌을 더 해준다. 여기에 스트라이프 에보니로 된 픽가드는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앞뒤로 에보니가 올라간 헤드

  헤드 탑으로 에보니를 올린 것도 모자라 헤드 뒷면도 에보니로 처리했다. 게다가 아이보로이드로 된 날개 문양은 예쁘다는 말이 안 나오기 힘들 정도다.

 

부족하지 않은 저음과 의외의 펀치감

 

  대부분의 테일러 기타들이 저음에서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특히, 614CE는 중고음역에 치우친 소리를 내는 메이플 바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바뀐 614를 처음 연주했을 때 의외의 저음과 펀치 감에 깜짝 놀랐다. 연습실 한편에 걸려있는 2008년식 614CE와는 완전히 다른 기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브레이싱의 변화

  소리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뀐 브레이싱일 것이다. 테일러에서는 이를 '어드벤스드 퍼포먼스 X 브레이싱'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마틴으로 치면 '포워드 시프티드 X브레이싱' 정도겠다. 브레이싱을 앞으로 당긴 것뿐만 아니라 더 얇게 했고, 접착도 천연 아교로 했다. 그 덕분에 무게가 가벼워졌고, 울림도 많이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08년식 614와 동시에 들어보면 무게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는데 브레이싱뿐만 아니라 상판과 측후판도 더 얇게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얇아진 피니쉬도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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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파이드 탑(Torrefied Top)

  또, 글 첫머리에 언급한 토리파이드 탑(상판)을 써서 새 기타의 답답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814CE에도 넣지 않은 옵션을 614CE에 적용한 것을 보면 앤디 파워스가 메이플 바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최근 들어 계속해서 내놓고 있는 빌더스 에디션에 600번대 바디만 두 대가 있다. 

 

다소 애매해진 고음과 아쉬운 픽업 소리

  저음과 펀치 감이 좋아진 반면 기존의 장점이었던 중고음의 달콤한 배음은 덜하고, 서스테인도 약간 더 짧게 느껴졌다. 대중성은 더 좋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메이플 기타 마니아에게는 조금 갸우뚱할만한 소리일 수도 있다. 토리파이트 탑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건조한 소리가 나는데, 이 점 역시 예전의 614와는 너무 달라서 적응이 안될 정도다.

 

ES2 픽업 센서

  게다가 이 기타는 ES2 픽업과의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 ES2는 메커니즘 특성상 새들에 전해지는 압력뿐만 아니라 상판의 울림도 잡아내는데, 바뀐 브레이싱은 브릿지 주변부의 진동이 커서 피에조 센서에 상판 울림이 과도하게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브릿지 주변이 타이트하게 잡히는 V-Class 브레이싱 기타들이 픽업 소리가 좋아진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약해진 내구성

  상판과 브레이싱을 얇게 썼기 때문에 기타 줄의 장력에 의한 변형에 취약하다. 실제로 지난 4년간 지켜본 결과 여름철에 관리 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이런 단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지금의 V-Class 브레이싱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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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사운드란 이런 것일까?

흥미로운 기타 테일러 614CE

  이 기타는 눈을 가리고 연주하면 메이플 기타인지 모를 정도로 중음이 강조된 따뜻한 소리가 난다. 여기에 앞에서 이야기했던 음색 특성을 종합해보자. "펀치 감이 좋으면서 서스테인이 짧다.", "배음이 풍부하지 않고, 바싹 마른듯한 건조한 소리가 난다." 이렇게 쓰고 보면 전형적인 빈티지 기타의 특징이다. 연주하는 내내 경쾌한 기분이 들었고, 소위 말하는 맛있는 소리라고 느낀 이유는 여기에서 기반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테일러 기타 특유의 해상도 높은 소리는 여전하다 보니 마냥 레트로 사운드라고 하기에도 특이한 소리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소리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쩌면 이 기타야 말로 뉴트로에 근접한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기타에 대해 묻는다면 "단 한대로만 쓰기엔 아쉬워도 종종 그리워질만한 재미있는 소리를 가진 기타"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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